'끝이라는 걸 알지만

미련이란 걸 알지만

이제 아닐 걸 알지만

그까짓 자존심에

널 잡지 못했던 내가

조금 아쉬울 뿐이니까'

 

노래가사들이 마음에 박힌다.

 

앞으로 다가 올 사람을 더 소중히 하라고

이제서야 이렇게 그 때 생각이 많이 나나 봐.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결혼 진심으로 축하해. :)

 

첫째, 내가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둘째, 그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셋째, 나를 제일 잘 아시고 엄청나게 사랑해서 축복하기를 바라시고,

넷째, 내 만사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고,

다섯째,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신다.

있잖아.


너를 마주보고 나는 너의 허리춤에 손을 두르고, 너는 내 목덜미에 손을 올리고 하던 키스는 너무 달았다.


코 끝을 스치는 살내음도, 은은한 샴푸향도 너무 달았다.


입술은 너무 탱글해서, 중독성이 있어서, 결국 입술이 아파올 때까지 키스하던 때가 기억난다.


너의 몸은 참 예뻤다.


내가 뭣도 모르고 짓궂은 농담을 했던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 바보같아. 속으로는 정말 좋았으면서.


너를 안아 올리면 내 허리를 같이 끌어 안아주는 다리도,


내가 작다고 놀렸지만 실은 정말 예뻤던 가슴도,


자꾸 응큼한 장난을 치게 만든 엉덩이도,


안을때 야릇한 기분이 들었던 잘록한 허리도.


너도, 나도 둘의 입술이 미끄러지듯 키스하는걸 좋아했다.


키스하다가 코끝이 자꾸 스치면 헤헤헤헤 하고 웃었더랬다, 우리 둘.


같이 잘 때 팔베개 해주는걸, 팔베개 베는 걸 좋아했다, 우리 둘.


제멋대로의 포즈로 자다가 문득 다시 서로를 꼬옥 안아주는걸 좋아했다, 우리 둘.


나란히 앉아있으면 내 어깨에 네 머리를 기대는걸 좋아했다, 우리 둘.


내가 앉아있을 때 마주보고 내 무릎에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 보는걸 좋아했다, 우리 둘- 아니, 이건 내가 훨씬 더 좋아했지.


키스하고.. 키스하고... 또 키스하고...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하루 종일 좋았더랬다. 질리지도 지치지도 않고 키스했더랬다.


너는 웃는 얼굴이 참 귀엽다.


지금은 비록,


다른 사람 옆에 있는 너이지만.


곧 그 사람과 결혼식이라고 주변에서 들었다.


진심의 진심을 다해서,


이전에 어떤 사람한테도 이만큼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빈 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웃음과 행복이 넘치기를 바라.





요번에 CGV가 영화관 좌석을 고쳐서 돈 더받을려고 꼼수부린 기사를 읽고

또 그 밑에 달린 댓글중에 'CJ가 싫어진다'라는 댓글을 봤다.

그 글을 보니 생각난건데, -

기업은 자본주의의 대표적 산물이다.

특히 대기업은 자본주의의 특징을 더욱 더 부각시킨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안전한 집 등등 생활을 하고 행복을 영위하고싶은 기본적인 욕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필수이다. 돈이 있어야 그것으로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을 한다. 그래야 돈을 버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재능과 관심이 다르다.

그런 각자 다른 사람들이, 혹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더 효과적으로 돈을 잘 벌기 위해 모인 집단이 기업이다.

그리고 그 기업들 중 돈을 많이 벌고 잘 벌게 되어서, 이걸로만 벌다가 저걸로도 벌고, 그걸로도 벌게 되면 그게 대기업이겠지.

대기업은 그 기업을 이루는 사람들의 '더욱 더 효율적으로 돈을 잘 벌기 위한' 끊임없는 욕망에 따라 점점 더, 가능한 한 최대로 많이 벌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CJ는 끊임없이 온갖 꾀를 부릴것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CJ뿐만 아니라 모든 대기업들이 그렇겠지.

그래서 내 결론은

엄청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빠르든 늦든 자본주의 안에서는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는게 당연한 것 같다.

저런걸 완화하고 재분배하는게 정부라는거 안다. 근데 우리나라 정부는 그런일 안하잖아 씨발.






잠을 자꾸 참는 버릇이 생겼다.

자기가 싫은건 아닌데..

자기가 아까운건지...


질투가 아주 심하다.

미련과 집착이 아주 강하다.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게으름과 약속시간 늦음도 심하다.

의지가 아주 약하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쁜사람은 아니다.

남에게는 충분히 좋은 친구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 이성적이라 생각하며

내 판단을 보편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봐도 꽤 그런 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임민혁이라는 친구의 페북을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내가 가진 컴플렉스가 가끔은 애먼 사람을 미워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 경우가 있는거 같다고.

나는 나 자신을 decent하다고 여기는게 있다.

오만인 것 같다. 얼마나 추잡하고 추잡하고 추잡하고 불의한지 내가 나를 잘 안다.

조금.........

내 증오심을 조절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분노도.

답답하고 힘들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한테도 부탁할 수 없다.

후회없는 인생을 살기란 이다지도 힘이 드는 것 같다.

뭐가 뭔지... 뭐가 진짜 가치인지... 내가 판단은 제대로 한 건지...

용기가 없었던건지... 정말로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차라리 이렇게 꺼림칙할거였으면 그냥 질러보던가.

힘이 쭉 빠지고 기운이 없다.

씨벌...

후회된다.

삶이 너무 거칠다. 밥 먹고 자고 일 하고 늙어가고 언젠가 죽고.

살면서 즐거움이라곤 별로 없다.

맛있는것을 먹을 때

잘 맞는 친구들이랑 얘기를 할 때

남에게 인정을 받을 때

훌륭한 것을 보거나 들을 때

성적 쾌감의 절정을 맛볼 때

그런데,

어차피 언젠가 죽을거라면.. 이 모든 것들이 기억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있었어도 없었던 일이 되는 것 같다.

무료하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물질의 존재가 마치 내 상상 속의 허구일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생각한다.거기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 의심치 않을 때는

하나님의 존재가 나의 단단한 기초가 되어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할 물리적 물질적 가치를 본질적 가치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이 계시한 영원한 가치들만이 진짜 가치라 여겼기에

나는 지금껏 이렇게 깊은 우울과 회의감, 피로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그 단단한 기초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내가 그동안 쭉 믿어왔던 가치관의 근본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내 머릿속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은 정말로 계시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나는 창조주가 없이 내 자신으로 존재하는 존재인가.





서론.


 나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이 접하는(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인식하려하고 이해하려하는 노력을 통해 알고자 하는 욕구를 해소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먹을 것, 입을 것, 볼 것, 들을 것, 등등 모든 영역에 있어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 특정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폭과 그 가지수는 매 순간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일이 예를 들지 않아도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100년 전과 비교하면 더 뚜렷하게 알 수 있겠고. 그리고 모든것이 그렇지는 않지만, 보통은 새로운것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낡은것이 영원히 소멸하는 일은 적기에, 우리의 삶은 매 순간 폭발적으로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어쩌면 그 이전부터) 접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특정 자극과 정보에 더 민감하고 풍부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생기고,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방대한 정보기반을 토대로 우리가 일부러 판단하지 않아도-즉, 무의식중에- 작동하여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것들에 대하여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대략적인 어떤 '느낌'을 받게 만든다. 이를테면, 좋거나 싫거나... 같이.

 장황하지만, 위의 한 문단은 내가 '취향'이라는 단어를 내 스스로에게 설명하며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한가할 때 종종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있는 단어들의 의미를 내 스스로 설명하는 짓을 즐겨한다. 단어를 해체하고,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 외국어의 동일한 의미를 띄고있는 단어와 그 쓰임새의 다른점을 생각해보는 따위의... 이런... 정말로 크게 의미없는 과정들이 나에게는 꽤나 재미있는 생각놀이이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리뷰를 쓰는데 그 주제를 뭘로 할까 하다가 최근에 알게된 음악가들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물론 최근에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 없다.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제서야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며 이것저것 읽기도 하고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다. 이미 아는것에 대해서 써도 재미있겠지만,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상 모르는 사실들을 새로 알아가면서 쓰는것도 괜찮겠다 싶어서이다.


음악이라는것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회와 반복성이 엄청나다.


 내가 TV나 영화를 볼 땐, 일단 내 시선이 그곳을 향하고 있어야 하며, (스마트폰과 별로 안 친한 나는 특히나) 영상이 보이는 어디엔가 가만히 있어야 한다. 즉, 공간적인 제약과 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얘기 할 수 있다. 내가 만화책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만화책을 손에 집어들고 내 시선을 그곳으로 향해야만 만화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대부분의 미디어는 그것을 시도해보겠다는 나의 의지가 꽤나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귀로 듣는 이 음악만은 조금 다르다.


이놈은 그냥 틀어놓으면 들린다. 내가 꺼도 옆에서 틀면 들린다. 길을 걸어도 길옆의 가게에서 틀어놓으면 들린다. 눈에는 눈꺼풀이 있고 입에는 입술이 있지만 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냥 들린다."

 우리는 심지어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식사를 한다. 그만큼 음악은 마치 숨쉴때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접해진다. 그리고 다른 미디어에 비해 피로감도 덜하다. 영상과 글보다 훨씬 장시간 노출되어도 비교적 피곤함을 훨씬 덜 느낀다.

 그렇다면 그만큼 존재감이 약한 매체인가? 그렇지도 않다. 음악이 없는 거리, 음악이 없는 레스토랑, 음악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라. 어떤가? 겁나 심심하지.

 그럼 그만큼 영향력이 없는가? 라는 질문에는 옛날 군대들이 칼과 창으로 서로를 발기발기 찢어놓기 직전에 투쟁심 고양을 위해 빠른 북소리나 군가같은 음악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대답으로 하고싶다. 그외에도 예는 많지만 당장 잘 생각이 안나서... 어쨌든.


 음악은 그렇게 힘이 쎄다. 우리가 인지를 하고있든, 그렇지 않든간에 하여간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이것에대한 근거를 늘어놓자면 내가 이 리뷰를 언제 마칠지 모르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그렇기에 음악적 취향이란건 정말로 중요하다. 나에게 평생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의 몸을 구성한다면, 우리가 접하는 매체들- 즉, 우리가 보는 영상, 우리가 읽는 책, 우리가 듣는 음악 등등이 우리의 생각을 구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생각들을 하게 된 이후부터의 나는, 음악을 고를 때 그 가사를 굉장히 신경써서 듣는다. 그전에는 외국의 곡이든 국내의 곡이든 일단 귀로 듣기에 멜로디가 좋으면 즐겨들었었지만, 지금은 아무리 멜로디가 좋아도 가사의 내용이(때로는 작곡의 의도가) 좋지 않으면 듣지 않는다.


아니.. 쓰다보니까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어쨌든 음악은 사람의 삶에 있어 이렇게나 중요하다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음악가들, 가끔은 앨범이나 곡에 대한 리뷰를 쓰며 듣는 동안 어떻게 느꼈었는지, 그리고 리뷰를 쓰려고 조사를 하며 내가 편협한 시각에서의 오해나 곡해는 없었는지, 그런것들을 기록하는 목적으로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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